
1928. 11. 6.
공화당 허버트 후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됨.
11. 7.
대통령 당선 축하하는 상승장이 시작. 12월까지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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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초
연방준비은행은 과열되는 시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시장에 이런저런 경고메세지를 던짐.
2. 7.
영국은행이 미국으로의 자금유출을 줄이기 위해
기준금리를 1% 올리려 한다는 뉴스에 하락.
3월
후버 대통령 공식취임.
취임을 축하하는 의미로 상승장 시작.
3월 말.
(증시과열을 부르는 투기를 방지하기 위한?)
연준의 비상회의에 겁먹은 시장은
주식을 팔아치우고 하락장이 발생함.
하락으로 증거금만 가지고 매매하던 사람들에게
증거금 추가납입요구가 발생.
단기차입금리가 20%에 달하고 시장에 돈줄이 마름.
이에 연준 간부이자 내셔널시티뱅크 은행장이던 미첼이
돈줄이 마른 시장에 자금 공급을 하겠다며 시장을 진정시킴.
금리는 하락하고 시장은 살아남.
1929 초 하버드 경제학회는 완만한 경기후퇴를 예상함.
여름까지도 경기후퇴가 나타나지 않자.
경기후퇴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번복함.
여름을 지나 가을에 들어서면서
자동차와 철강 생산량의 후퇴가 나타남.
8월
외국에서 뉴욕으로 금이 대량 유입됨.
9. 3.
다우지수 사상 최고점을 기록.
기상청은 날씨가 가장 더운 날이라고 발표.
9. 4.
투자자문업자 로저 뱁슨이
연례 미국 경제인회의에서 증시의 붕괴를 경고.
'조만간 증시 붕괴가 온다. 무시무시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공장은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되고
악순환이 계속 된다. 그리고 심각한 경제공황이 발생할 것이다.'
뭇 사람들과 언론들이 시장에 초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비난함.
9. 5. 뱁슨의 말에 영향받아 시장이 하락함.
많은 사람들이 증시조정의 기회로 매수에 나섬.
9월
투신사들이 6억달러 규모의 신주를 발행했으나.
주가는 약세를 보임.
9. 20.
영국에서 거대기업 클래런스 하틀리가 사기사건 발각되어 파산.
영란은행은 이자율을 올리고.
영국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을 팔아치우며 원금회수에 나섬.
9. 22.
신문에 난 금융 기사.
'강세장에서 주식매도 시기를 놓치다'
'대부분 투자자들은 강세장에서 돈을 벌었지만 불가피하게 뒤이은 조정기간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모두 잃거나 때때로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잃는다'
10. 4.
제네럴모터스 차량판매 급감을 발표.
10. 11.
투기꾼 제시 리버모어가 주식을 팔고 있다는 소문이 퍼짐.
(실제로 열심히 공매도를 치고 있었음. 결국 1억$을 벌어들임.)
보스턴 에디슨이 주가가 높으니
1/4로 액면분할 해달라는 요구를 했으나
당국으로 부터 거절당하고
당국은 보스턴 에디슨의 세무조사 계획을 발표함.
10. 15.
내셔널시티뱅크의 미첼 은행장이
독일방문에서 귀국하며
'시장은 전반적으로 건전하다. 미국의 전반적인 번영속에서 주식가치는 건전하다.'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잘나가던 투자가인
어빙 피셔 왈
'나는 주식시장이 몇 달 안에 오늘보다 한층 더 높은 수준에 도달 할 것이라고 본다.'
(어빙 피셔는 대공황기에 물타기 하다 파산함.)
10. 19. 토요일.
'상무장관이 J.P. 모건에게 기증받은 요트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금 10만$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는 보도가 나옴.
토요일 장후 거래에서 큰 하락 나옴.
장후 증거금 추가납입 청구가 상당히 많이 발생함.
10. 21. 월요일.
쏟아지는 물량으로 주가표시기가 한시간씩 늦어짐.
하락장이었으나
종가는 다행히 저가보다 위에서 끝남.
10. 22. 화요일.
하락은 멈추고 약간 상승함.
미첼 은행장과 어빙 피셔 교수는 월요일 하락이 과했다며
시장에 낙관론을 펼침.
'시장은 건실하며 내버려두면 저절로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폭락을 예언했던 로저 뱁슨은
'주식을 팔고 금을 사라.' 고 함.
10. 23. 수요일.
오전장 시작은 조용했으나
점심에 가까워지자 자동차 섹터에서 하락시세가 나오고
전 종목으로 하락시세가 늘고 거래량이 증가함.
415 ㅡ> 384 포인트로 31포인트 폭락.
10. 24. <<검은 목요일>>
주가 11% 폭락.
윈스턴 처칠이 뉴욕 증권거래소를 방문함.
처칠은 9월초 강연을 위해 미국을 방문 여행중이었음.
강연료와 원고료 로 받은 2만$을 미국 주식에 투자함.
(처칠은 11월 시점에 1만$을 날림.)
처칠의 기록 -
마치 개미집을 들쑤셔 놓은 것처럼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그들은 엄청난 양의 주식을 헐값에 3자에게 팔아치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상당기간 동안 이들이 내던지는 엄청난 부를 사려는 사람들이 전혀 없었다.
24일 12시 30분.
시카고, 버팔로 거래소 거래중지.
투기꾼 11명 자/살.
ㅡ처칠은 그날 묵던 호텔에서 투신하는 사람을 봤다고 함.
24일 오후 1시
여러 은행장들이 J.P. 모건의 회의실에 모여
증시안정을 위해 주식매수를 결의.
시장은 어느정도 회복하고 마감했으나
거래량은 평상시의 3배를 넘음.
25일. 금요일.
26일. 토요일.
시장의 요동은 일시 진정되는 듯한 모습을 보임.
27일. 일요일.
주말동안 증권사는 여러 자료들을 폐기하고
마진론을 쓴 고객들에게 상환하라는 전보를 준비.
28일. 월요일.
본격적인 하락의 시작되어 298포인트에서 260포인트로 -30포인트 폭락.
콜시장에서 외국은행들과 기업들은 긴급하게 대출을 회수함.
10월 29일. <<검은 화요일.>>
마진론 상환을 요구받은 투자자들이 상환자금을 만들려고 주식을 마구 던짐.
쏟아지는 주문에 설비가 고장나고 대서양 해저케이블이 불통.
주가표시기가 고장.
전화선은 통화 폭증으로 불통.
마진론 상환 전보를 받은 전보회사들은 택시를 임대해 전보를 전달.
주가표시기는 장종료후 2시간 뒤에야 작동하고
다우지수 30포인트 폭락해서 260 ㅡ> 230 포인트.
11월 중순까지 폭락이 이어지고
후버 행정부는 폭락 여파를 막기 위한 여러 조치들을 내놓음.
정부와 기업의 돈을 푸는 여러 조치들 효과로
11월 14일부터 반등해서 며칠동안 저점에서 25% 상승함.
공황은 끝났다는 낙관론이 일고 주식시장은 다시 활기를 찾음.
1930년 3월
후버 대통령은 공황이 두달 내에 종식될것이라고 선언.
4월.
다우지수 300 돌파. 10월 붕괴의 저점에서 50% 상승함.
하지만 반등은 거기까지였고
시장은 10월 저점까지 재차 하락함.
하락은 1932년까지 계속 하락해서
1932년 7월 8일
41.88 포인트를 최저점으로 기록.
이 기간동안 미국 GDP는 60%가 날아가고
실업자수는 1250만명이 발생.
비농업부문 취업자의 1/3이 일자리를 잃음.
이후 대공황 직전 수치까지
지수가 회복한것은
20년 뒤인 1954년에 회복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