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자본주의는 어떻게 망가져 왔는가
실전단타왕       1,385 2022-01-02

자본주의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받으면 십에 팔구는 애덤 스미스를 지목할 것이다.

그의 저서인 국부론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으로 고등학교 교과과정에도 실려 있으니, 한번쯤은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자본주의가 망가져 가는 과정에서 그의 사상은 심각하게 오독되었다.

자본주의의 200년 흐름을 따라 그의 주장과 그것이 어떻게 오도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글을 써 본다.

 

우선 애덤 스미스가 쓴 국부론의 원제를 살펴보자.

국부론의 원제는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the Nations>이다.

<The Wealth of Nations>로 흔히 알려져 있긴 하지만, 원제는 훨씬 길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국부론의 원제에 담긴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

nature라는 단어를 물리학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외력에 의해서 시스템이 움직인다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내적인 목적을 위해 시스템이 움직인다는 의미에 가깝다.

cause라는 단어에 집중하자면, 역시나 계몽주의 사조의 선구자인 뉴턴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다만 뉴턴의 인과관계는 외력을 원인으로 삼는 F=ma의 개념이라면, 애덤 스미스는 원인을 내적 시도와 등치시키려는 개념에 가깝다.

어찌 되었든 스미스의 요지는 비록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경제시스템의 본성(nature)에 의해 개개인의 사사로운 욕망의 추구가 전체의 공익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individual attempts가 public interests로 이어지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장의 internal nature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흥미로운 메커니즘이다.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의 이러한 주장이 아무 맥락 없이 뜬금없이 튀어나왔는가? 당연히 아니다.

애덤 스미스가 바라보는 시선은 일관되게 1770년대의 미국 독립 혁명을 향하고 있다.

미국 혁명의 의의란 무엇인가? 바로 영국의 절대왕정, 독재군주로부터 정치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일련의 투쟁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단순한 정치적 자유만을 언급한다면 혁명의 본질을 망각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미국 혁명은 영국 왕정의 부당한 조세정책과 보호무역주의에 저항하기 위한 싸움이었으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투쟁의 방향성은 경제적 자유를 향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혁명에서의 정치적 자유란 경제적 자유에 종속되며,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주장한 맥락도 이것과 일치한다.

즉 국부론은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절대왕정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온전한 사상적 기틀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는 일반의 통념과 같이 노골적인 경제적 자유와 정부의 무간섭 원칙을 주장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해의 소지가 많으므로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애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Consumption is the sole end of the production"

생산의 유일한 목적은 소비란 뜻이다.

소비는 일반적으로 서민, 즉 다수의 일반대중에 의해 이루어지며 소비지출은 노동으로 얻은 요소소득에 기반한다.

따라서 소비는 노동의 가치환산이며,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이러한 메커니즘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즉 스미스는 노동가치이론(Labor theory of value)의 선구자인 셈인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보지 않았는가?

맞다. 맑스의 자본론에서 쉴새없이 나오는 부분이다. 

애덤 스미스의 노동가치이론이 국제경제학의 거두인 리카아도에게 영향을 주었고, 이것이 맑스로 계승된 것이다.

즉 애덤 스미스와 맑스는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관계이다.(애당초 맑스의 비판이 상당수 애덤 스미스의 전제에 대한 수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아무튼, 이러한 노동의 강조 맥락에서 애덤 스미스는 분업과 전문화를 이야기했다.

분업과 전문화를 옹호한 내용 중에 비단 효율성의 논리를 차치하고서라도,

"universal opulence which extends itself to the lowest ranks of the people"

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분업과 전문화를 통해 그 혜택이 최하류층의 인민에까지 돌아갈 수 있음을 주장하는 내용이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비판했지만, 한편으로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나 자유지상주의자들 같은 일부 얼간이들이 이러한 애덤 스미스의 "정부개입에 대한 촉구"를 오독해 대는 덕에 그들이 스미스를 불완전한 이론의 초기 창시자이니, 혹은 후대 사민주의자들에게 타협의 빌미를 제공했느니 하는 별 같잖은 소리가 나오지만 실제로 스미스는 본인들의 사상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역사적 맥락을 보더라도, 스미스가 비판한 정부의 개입이란 민주정부의 개입이 아닌 절대왕정의 중상주의적 개입을 말한 것이다.

즉 스미스의 사상이 케인지언이나 공공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더 잘 맞았으면 맞았지, 신자유주의자들과 스미스가 잘 맞을 리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간에 애덤 스미스가 싫어했던 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듯하다.

공적 외부요인과 민간 외부요인인데, 신자유주의자들이 침묵하는 것은 보통 후자에 해당한다.

공적 외부요인은 당연히 정부의 개입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민간 외부요인에 해당하는 것은 독과점이다. 독과점이 뭐가 문제일까?

독과점이 미치는 병폐란, 균형가격을 파괴하고 다수의 공급자와 다수의 수요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붕괴시키는 데 있다.

이를 입증하는 대목이 자유시장경제에서 희소성을 전제로 할 때, 효율의 극대화란 완전경쟁과 필요충분한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누군가가 이득을 보면 누군가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 완전경쟁이며, 이것이 최대의 효율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다 싹쓸이하는 그런 게 효율적이라는 게 아니라, 이론적인 조건에 관한 것이다.

혹시나 변분법을 안다면 변분법의 정의를 생각해 보자. 말 그대로 경제학에서의 virtual maximization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아이돌 애덤 스미스는 조세제도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보리수들이나 애국보수 투사들과 같이 증세는 곧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계셨을까?

"It is not unreasonable that the rich should contribute to the public expense, not only in proportion to their revenue, but something more than in that proportion"

아니.. 애석하게도 스미스는 불평등의 합리성이라는 논의를 전개하며 사실상 현대의 누진세 개념을 옹호하고 있다.

즉 누진세 개념은 스미스의 고전경제학을 계승한 것이 맞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렇게 또 하나의 패배를 적립한다.

 

이렇듯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균형기능과 균형기능을 유지하게 하는 룰의 필요성을 굉장히 강조했다.

룰이란 공정한 시장경제, 공정한 룰, 독과점의 철폐, 하층민에게 주어지는 혜택, 누진세 뭐 이런 것들을 말한다.

스미스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부자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즉 간명하게 이야기하자면 룰이 있으면 자본주의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고,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스미스의 사후에 자본주의는 어떻게 돌아갔을까?

19세기부터 독과점 부분은 잘 지켜지지 않기 시작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독과점을 막기 위해 독과점방지법과 정부의 규제가 시작되었다.

애덤 스미스의 논리에 따르자면 정부의 개입과 독과점이 동시에 생겨난 것인데, 즉 시장경제에는 최악의 결과물인 셈이다.

독점이 생겨난 결과 실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상품의 가격은 임금과 이윤으로 구성되는데, 독점의 결과 이윤이 어마어마하게 비대해졌다. 노동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앞서 스미스의 말에 따르면, 생산의 유일한 목적은 소비라고 하지 않았는가?

 


 

 

위의 그래프를 참조해 보자.

가처분소득이 많을수록 소득증가분 대비 소비증가분이 적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는 즉시 제깍제깍 소비하는데, 이윤의 수혜자인 부유층은 펑펑 신나게 써 봐야 이윤을 다 못 쓴다.

그러면 이윤은 stock이 되고, 결국 투기자금(speculative capital)이 된다. 알다시피 투기자금은 총수요 증가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는다.

 

결국 노동가치가 평가절하되면 절하될수록 가격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어지고, 이윤이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난다.

당연히 임금이 적어지면 중하위층의 소비도 감소하게 되고, 그러면 총수요가 적어지고 과잉공급 상황이 조성되게 된다.

한편 부유층은 투기자본화된 이윤을 이용해 주식시장에 버블을 조성하고, 당기순이익을 배당금으로 전환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투기자금을 늘려나간다.

이러다가 터진 것이 바로 19%29년 대공황이다. 19세기 말부터 누적된 결과가 192%9년 폭발적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뭐 첨언하자면 통화주의자들은 통화량의 감소에 FRB가 신속한 통화정책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가 대공황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21세기에 통화주의자들이 주도한 정책이 어떤 파국을 낳았는지만 봐도 그들의 논리적 결함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면 1970년대의 상황을 한번 살펴보자.

1971년의 유가 상승으로 인해 비용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이는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인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직결되었다.

여기서 대처주의와 레이거노믹스에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신자유주의자들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경직된 노동시장에 유연성만 불어넣어주면 인플레이션이 해소될 것처럼 떠들어 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스미스로 돌아가 보자. 1970년대 비용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무엇이었는가?

유가가 상승했던 이유는 OPEC이 원유를 구매하기 위한 결제수단으로 달러가 아닌 금을 요구했기 때문인데,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달러를 찍어내고 금본위제를 폐지할 필요가 있었다. 

즉 비용인플레이션의 근본적인 원인은 "베트남 전쟁"이었던 것이다. 경직된 노동시장 따위가 아니었다.

 

지대가 시장외적 요인에 의해 교란되었고, 이로 인해 요소시장의 교란이 초래된 상황에서 애덤 스미스식 해법은 당연하게도 국제관계의 개선이다.

애덤 스미스가 1970년대 미국의 대통령이었다면 당연하게도 전쟁을 멈추고, 국제관계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을 것이다.

유가급등의 근본원인은 전쟁으로 인해 재정지출 증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닉슨이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본원통화를 늘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근본원인을 외면한 채 신자유주의 정부의 대응을 이루는 두 축은 감세정책과 노동 유연화였다.

앞서 애덤 스미스가 그렇게나 강조했던 룰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그의 조세정의에 완전히 역행하는 정책을 펼쳤던 것이다.

또한 당시의 정부는 노동유연화 정책은 물론이고, 금산분리 정책을 적절히 시행하지 못해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것을 용인하고 말았다.

그 결과로 노동의 평가절하는 점차 가속화되었고, 중산층 붕괴는 당시부터 구조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1990년대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1990년대는 유례없는 낙관주의와 낭만의 시대였다. 바야흐로 디지털 혁명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기술혁신이 곧 가격혁신을 불러왔고, 통신에 의한 세계화가 이루어져 대규모 범용대중시장이 창출되었다.

정보혁명으로 인하여 유례없는 최대의 경기호황이 찾아왔으며, 선진국 빈곤층의 정보력이 애덤 스미스 시대 절대왕정의 정보력을 압도하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가 보았다면 찬사를 아끼지 않았을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소비에트 연방은 해체되었으며, 미국이 유일한 슈퍼파워로 군림하게 되며 자본주의의 승리는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위기는 늘 그렇듯 예기치 못한 곳에서 찾아온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나스닥 종합지수는 400% 넘는 수치로 상승했지만, 2000년 이후로 이 버블은 빠르게 붕괴된다.

닷컴버블의 붕괴로 인해 투자자들은 무려 5조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닷컴버블의 근본적 원인은 IT산업의 성장성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성장성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지점을 스미스식으로 분석해 보도록 하자.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생산의 유일한 목적은 소비이다. 

즉 닷컴버블은 스미스식으로는 유동성에 의존하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소비성향을 높일 수 있는 중산층이 이미 무너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동통신 시장의 예시를 들자면, 음성트래픽을 주 수익모델로 삼은 2세대 이동통신의 디지털 모빌리티는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여기서 본격적으로 채널을 넓힌 3세대 무선 interface와 2.5세대 패킷망을 결합시켜 멀티미디어와 글로벌 로밍의 원대한 포부를 이루겠다던 3세대 이동통신의 경우 결과적으로 계획은 크게 지연되고 말았다. 이는 당시로서 소비수요의 창출 가능성이 없거나 미진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중산층의 붕괴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따른 노동계급 붕괴에 따른 것이며, 이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주도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 애덤 스미스는 소비는 생산의 유일한 목적이며 자본주의의 유지에 있어 룰이 중요함을 강조했는데,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용감하게도 이런 스미스의 이론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닷컴버블의 붕괴 속에서 미국 경제는 장기적이고 완만한 경기하강을 맞이할 운명에 놓여 있었다.

당시 미 연준을 장악하고 있던 통화주의자들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 어떤 대응책을 강구해 냈을까?

그들은 매우 통화주의자다운 해법을 내놓았는데, 경기하강을 막기 위해 장기간의 초저금리 정책을 선택한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보았다면 통곡했을 일이다. 중산층의 붕괴로 수요창출이 미진해지는 상황은 외면하고 통화정책을 선택하는 것은 실로 "나는 양극화 해결 의지가 없어요" "중산층이 죽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냐" 고 자인하는 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당시의 비판적인 학자들이 예견했던 대로 저금리 정책은 시중은행들의 대출 확대로 이어졌고, 유동자금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증가한 자금은 대공황 때와 마찬가지로 투기자금이 되어 이번에는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중산층이 몰락하여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 사례가 많았는데, 부자들뿐 아니라 이런 빈곤층들마저도 투기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부동산에 버블이 생겨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직전에는 부동산 거래량이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해졌다.

마침내 가격 하락이 시작되고, 버블이 붕괴되면서 급매물이 출회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저소득층의 경우 은행에서 대출 회수가 불가능해졌고, 이게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의 본질인 것이다.

 

다시 말해 2008년 금융위기는 부동산 버블과 가계신용 부실을 방조한 결과이다.

그런데 부동산 버블과 신용부실이 초래된 원인은 연준이 중산층 계급의 붕괴를 방관하고 초저금리 정책으로 투기를 더욱 용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통화팽창으로 소비를 끌어올려 봤자 소비성향이 안정적으로 증대될 수 있는 중산층을 육성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인데, 여기에서조차 통화주의자들은 애덤 스미스의 말을 오독하고 어떻게든 통화정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부시가 역대 최악의 성과를 남긴 채 아웃되고, 오바마가 집권한 이후로는 뭐가 달라졌을까?

오바마 정부는 세출을 통해 대자본 투자은행들을 우선적으로 구제했고, FRB의 저금리 정책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달라지지 않았다.

12년 동안 부지런히 찍어낸 달러는 충실히 투기자금을 만들어내어 미국의 경우는 주식, 한국의 경우는 부동산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이런 버블은 언젠가는 터질 것이다. 그러나 그 버블이 언제 터질지 예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이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도 아니다.

자본주의는 이런 방식으로 애덤 스미스에 역행하면서 망가져 왔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현재의 경제사령탑이었다면, 아마도 빨갱이 소리를 들었을지 모른다.

그는 공정성이 시장균형의 기반이자 수호자라고 주장했으며, 공정거래법의 강화와 노동법 강화를 적극적으로 외쳤을 것이다.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을 이루는 경제구조가 그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미스는 다시 살아올 수 없다. 또 스미스가 부활하더라도 그가 현재의 자본주의를 모두 원점으로 바로잡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애덤 스미스의 자본주의를 우리가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불행한 것인지이다.

그의 사상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자본주의가 이렇게 망가져 온 것은 일부 위정자들 혹은 경제인들의 욕심이나 탐욕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스미스 자체가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했던 인물이 아니던가?

그보다는, 애덤 스미스가 자본주의의 본성을 고려함에 있어 간과했던 부분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1) Centralization of economic power over time, 2) social inequality over time 이 두 가지가 필연적이라고 보았다.

엄숙론적 도덕주의에 입각한 수정자본주의자들이 투기하지 말라고 나팔을 불어대도 자본의 집중화는 생기고 불평등도 더 심화된다는 것이다. 

설령 모든 것이 초토화되어 사유재산이 고루고루 분배된 쁘띠부르주아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시간에 따라 불평등은 생겨날 것이고 더 심해질 것이다.

자본주의의 완전경쟁은 그 자체로 이상적인 조건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를 스스로 파괴(self-destruction)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완전경쟁에 충실한 "이상적인 자본주의"가 그 자체로 빈부격차를 누적시키고 종래는 공정성을 담보로 한 완전경쟁을 파괴하는 내적 모순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맑스가 말한 자본주의의 동역학(dynamics)이다.

 

이런 시스템상의 모순은 끝내 급진적 파괴를 겪게 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바로 노동계급의 혁명이다.

사유재산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지만, 생산수단의 공유를 전제로 한 사유재산 사회가 탄생할 것이다.

또한 이 모든 글을 읽고 스미스와 그의 정직한 계승자들이 이야기하는 "정직한 자본주의"에 환상을 가지는 이들이 있다면 한 가지 충고를 건네고 싶다.

 

 

애덤 스미스는 위대한 인물이 맞으며, 맑스에게 여러 방면에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훌륭한 학자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소자본가, 쁘띠부르주아, 영세 자영업자, 농민들이 가가호호 화목하게 생활하는 이상적인 자본주의 사회는 절대로 실현 가능하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자본과 경쟁, 사유재산이 갖는 내적 속성은 필연적으로 자본의 집중화와 불평등의 심화를 야기하고 만다.

존 로크식의 노동가치설과 연계뙨 사유재산권의 옹호가 결국 자본의 무한축적을 옹호하게 된 메커니즘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편하다.

따라서 정직한 뉴딜주의니, 이상적인 자본주의니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보다는 낫겠지만 결국에는 그 자체로 시간지연전술이고 위선적인 레토릭이다.

 

애덤 스미스와 자본주의의 역사를 통해 자본주의는 결코 일반적인 통념처럼 잘 굴러가지 않았으며 내적 모순은 더욱 증폭되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모두들 맛있는 저녁 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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